불평등한 한가지. 배신 (2) by classic0lu


 여기서 우리는 배신당한 사람의 입장에 서서 살펴봐야할 것들이 있다. 배신당한 내가 선인은 배신을 당한 후에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드리고 행동해야할까? 배신의 최후 결말을 보지 않아도 결국 어떤 결말로 치달을지 예상하기에는 우리의 지혜와 삶의 경험이 부족하다면...  배신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대게 당황스러워하고 조급해한다. 이 어찌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악을 악으로, 화를 화로서 갚을지 수많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그 복수의 달콤함을 위해 일을 저지르고 이런 현상은 날이 갈수록 점점 비일비재해지고 보편적인 것으로 치부되어간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배신에 대해 관용과 용서 인내를 베풀지 못하는 풍토가 되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현인들과 말씀에선 배신에 대해 인내를 권면하고 있다. 인내함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군자가 되길 염원한다.


  •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공자가 한 말이다. '날이 추워져서 다른 나무들이 모두 시들은 후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시들지 않음)을 안다'라는 의미인데 이 의미를 음미하면 음미할 수록 배신의 아픔을 품고 오랜 세월을 인내해야한다 것이 감정적으로 크게 인정하기가 싶지 않다. 너무나 안일하고 소극적인 삶의 자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말이 나오는덴 분명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 감정적으로 무모하게 배신에 대응하면 오히려 더욱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앙인이 배신에 대해 대응해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신앙인이 배신을 이기는 방법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로부터 배울 수 있다.

 예수님을 은동전 30닢으로 대제사장, 바리새인 그리고 로마에 팔아넘긴 배신자 유다는 영원히 최악의 저주를 받아 지옥에 떨어졌지만 예수님는 비극적이고 잔인한 고통을 당하는 와중에도 간절한 기도와 하나님의 뜻 아래 죽음에서 깨어나 부활하셨다. 예수님과 유다 모두 배신과 배신당함의 결과로 죽음에 치달았지만, 배신자 유다는 죽음보다 더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졌고, 배신당한 예수님는 죽음을 이긴 것이다.


그러므로 배신에 대한 하나님께 빌어 기도하는건 어떨까?


  • 지독한 저주와 죄의 처벌을 신께 부탁드리라. 만일 이 배신의 이유가 나의 부도덕함과 죄로 인함이라면 용서하시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를 벌하소서. 최후의 최후날까지 크게 후회하도록 하게 해달라고.  

 배신에 대해 더이상 관용을 베풀지 말고 절대 인내하지 말자. 다만 이 세상 그 어떤 배신자든 신의 힘을 빌어 저주하자. 마음으로든, 몸으로든 결코 직접 복수하거나 저주를 하지 말자. 저주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은 含血噴人(함혈분인) 이라 했듯, 자기 역시 저주받는다. 사람 입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막 7:20) 그러므로 입 밖으로 저주를 꺼내거나 직접 손을 쓰지 말자. 기도를 통하여 간구하고 그 저주가 하나님 보실때에 합당하면 벌하여 주실 것이다. 


 간절한 기도에는 반드시 자기성찰/ 반성이 뒤를 따라야한다. 모든 환난에는 이유와 의미가 있을텐데 이유는 타의에 의할 수 있지만 의미는 어떻게 해석하고, 복기(復棋)를 하느냐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이 배신이 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라면 회개해야 할 것이고, 그저 악인의 행위에 의한 것이라면 회복되기를 간구하라. 저주는 강력하게 한 번이면 족하나, 자기 자신의 회복과 거듭남을 위해 기도하고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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