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추구 : 축복에 대하여 by classic0lu


 나는 돈을 싫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대놓고 '나는 돈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을 하는 것보다 돈에 대한 솔직한 나의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더 솔직하고 정직하게 전달할 거라고 생각한다. 난 돈이 싫지 않다. 그리고 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이것을 추구한다. 또한 부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하는데 많은 시간을 드린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내가 부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이유가 뭘까?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이 한가지 있는데, 기도와 간구로 받은 은혜와 축복은 분명 감사드려 마땅하지만 거기에는 그 무게에 걸맞는 책임과 선한 의무가 따른다는 것이다. 모든 축복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랐다. 내가 축복을 받고도 감사하지 않거나 책임을 감당하지 않았다면 결국 축복은 사라졌다. 축복상황을 유지하고 더 키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깨어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내가 부의 축복을 구하여 받는다 하더라도 그 축복에 합당한 의무와 책임이 따를텐데... 지금 문제는 그 의무와 사명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과 경험을 하고 나니까 함부러 부의 축복을 기도할 수가 없다. 또한 내가 구하는 모든 것(건강, 바람직한 인간관계 등등)에 정당함과 필요성을 반드시 따지게 된다. 축복에는 명분이 따르거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돈을 포함한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재화들 대부분은 수단으로서 존재의미가 부여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다양한 가치추구들을 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될 때 본질에 충실한 것이고, 분수에 맞게 쓰여진 수단은 우리가 우려하는 많은 일들을 야기하기 힘들다. 하지만 수단이 본분을 잃고, 목적/목표가 되는 순간 불행한 일들이 시작된다. 돈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부가 필요한 이유 ; 부를 통해서 발현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한다.


 '가난하면 불행하다.'라는 명제가 있다. 가난을 물질의 양적, 질적 풍요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적거나 없는 것이라고 인식하면 이 명제는 참이다. 하지만 가난이 가치실현을 도와주는 수단의 부제가 되었을 때만 불행이라고 생각한다면 위의 명제는 거짓이 될 수 있다. 가난하더라도 추구하는 가치(이를테면 가족 구성원의 유대감같은..)가 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불행할까?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부유한 선진국의 국민들의 그것보다 월등히 높은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의 국민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부의 필요성이 얼마나 부합하는지 알아야한다. 추구하는 가치목표가 부 자체인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은 선진국과 달리 가족, 평화, 이웃과의 사랑, 자연에 대한 겸손 등을 추구하고 중요시하는 가난한 국가의 국민풍토는 물질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The secret'이라던가 미국의 번영복음의 대가 목사 조엘 오스틴의 주장들이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꿈을 이루게 도와주시고, 우리가 언제나 행복하기를 바라신다고 한다. 그런데 그 꿈이 다소 신앙과 결부시키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세속적인 것들이라서 이 말들이 참인지 거짓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 열풍은 우리나라 역시 피해가지 않았다. '긍정의 힘', '잘 되는 나' 의 도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많은 독실한 추종자들을 양산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 같이 어렵다고하는 성경의 예수님 말씀을 곧이 곧대로 믿는 것에는 허점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조엘이 오해한 것이 아닐까.


 조엘이 말하는대로 만약 당신이 신에게 부를 구하면, 신은 기꺼이 부를 당신에게 줄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신은 당신이 그 부를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알기 때문이다. 신에 입장에서 당신이 부를 악한 것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만 사용한다고 해서 손해는 아닐 것이다.도로 다시 가져가면 되고 물질적으로 모자라는 것이 아쉬운 분은 아니기 때문에 그 분은 이 문제에 있어 매우 자유롭다. 이러고 나면 우리의 기도 내용이 다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주여 부의 축복과 권세를 나에게 내려주소서.' 가 아니라 '주여. ~이런 이유가 있어 물질의 풍요가 필요하오니 저에게 그것을 내려주소서. 이 이유가 주님의 뜻과 일치한다면 부를 내려주소서.' 명분은 곧 사명과 책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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